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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문제에 대한 칸트의 논의와 기독교적 응답(정시구 교수)

작성일 23-04-16 19:06   /   조회 1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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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문제에 대한 칸트의 논의와 기독교적 응답


본 연구는 자살의 금지를 주장하는 칸트의 자살론을 검토해 봄으로써 현재 사회에서 널리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는 ‘자살은 근절(부정)되어야할 행위’라는 사회적규범의 정당성을 성찰해 보았다. 


그러나 칸트의 윤리학은 도덕법칙의 예외를 인정하 지 않음으로써 발생되는 비현실성(예를 들면 정신병 환자에게 도덕법칙의 준수를 요구하는 것)의 논란과 형식적 공허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수 있다. 그래서 단지 칸트의 논거만으로는 자살금지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정당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칸트의 자살금지에 대한 논거에 기독교 신학적 이해의 방식으로 토를 달며 칸트 윤리학의 독백적 성격의 극복을 도모하였다. 이를 통해 과연인간에게 자기 생명의 처분권이 있는지, 그리고 자살 행위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행위인지,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자살을 행함으로써 인격으로서의 인간성을경시한 것은 아닌지 칸트의 관점에서 묻고 기독교 신학적 이해에서 응답함으로써 논의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성서에서는 사는 것의 소중함은 자명한 것이며, 죽이는 것과 죽는 것은 극단적인죄로 여겼다. 칸트 식으로 구태여 말하자면 인간에게는살 권리가 있으며, 또한 살아가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는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라고 성서는 기독교적 생명관에 뿌리를 두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그 목적과 의미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사는 것은 우선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며,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살은 기독교 신학적 이해에 있어서도 칸트의 이해 방식과 마찬가지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I. 들어가는 말


통계청의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4년을 기준으로볼때 인구 10만 명당 27.3명,즉연간 1만 4000명,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13년째 OECD회원국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우리나라에 안겨주었다.


장 아메리(Jean Améry)는 그의 저서 『자살에 대하여: 자발적 죽음에 대한담론』(On Suicide:A Discourse on Voluntary Death)에서 ‘사회적 혹은 도덕

적으로 비난과 강요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자살은그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도 “자살이 허용되는 경우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무언가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자살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윤리의 본질에 빛을 던지고 있다. 자살은 말하자면 근본적인 죄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살 반대의 의지를 표명한다.


칸트는 자신의 다양한 저서들, 즉『실용적 관점에서본 인간학』,『윤리형이상학 정초』,『윤리형이상학』,『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등에서 자살에 관하여 논의. 여기에서 칸트는 자살의 금지 주장다. 자신의 윤리학적 원칙에 입각하여이 규범의 정당화를 시도.


II. 신의 소유물인 인간 존재


“인간은, 혹은 인간의 삶은 신의 소유물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해서는안 된다” 소위 칸트는 신의 소유물 테제(divine ownership thesis)를 통해 자살의 부도덕함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것.


칸트와 유사한 해석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존 로크(John Locke),인간은 신의 소유물이기에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인 자유는 자기 스스로를 파괴할 자유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보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자살할수 있는 자유와 또한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어떠한 피조물도 살해할수 있는 자유를 결코 갖지 못한다.(⋯) 사람은 원래 유일 최고의 주인인 신의 명령에 따라서,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지상에 파견된 종이며 또한 신의 소유물인데, 그들은 상호간의 제멋대로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 라 오로지 신의 의지에 부합하는 동안만 생존해 갈 수 있도록 자리매김 된 존재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살아야 하며, 또한 자기의 담당부서를 고의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플라톤(Platon)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논변에 터하 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논변을 제시하고 있다.“자네도 자네의 소유물들중 어떤 것이, 정작 자네가 그것이 죽기를 바란다는표시를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자신을 죽인다면, 그것에 대해서 화를 내고,또 벌줄방도만 있다면, 벌도 주겠지? (…) 이런 점에서 신이 어떤 필연을 (…) 내려 보내 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은 아마도 불합리하지 않을 거야.”


기독교 신학은 인간과 인간의 삶,즉 생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선적인 원리는 생명을 포함한 모든 현실에 관여하며 그 현실에 규정적으로 참여하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인간과 인간의 생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 초월적 존재가 모든 현실에 관여하며 규정하는그 관계를 ‘창조, 화해, 완성’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신은 인간 혹은 인간의 삶에 대하여 ‘창조자, 화해자,완성자’가 되며,이 신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생명은 ‘창조되고,화해되며, 완성되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과 그의 생명은 신의 피조물이 되며, 창조자인 신과의 관계로 인한 생명 혹은 삶이라는 의존성 이 이해되어진다. 


바로 이 이해로부터 인간이 아닌 신이야 말로 ‘생명의 주’임을 확인하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비의성(secretness)이 승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이해와 취급은 당연지사 인간의 자의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즉 인간은 생명을 생각대로 처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의 주’ 혹은 ‘생명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취급은 생명의 비의성 인식 속에서 인간의 겸손한 책임의 자각을 동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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